차갑게 식어버린 네 손을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가를 수십 번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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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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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우주 쓰레기가 너무 많아 이대로 가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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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어. 충돌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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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은 떨어지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그 자리에 부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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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마치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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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님! 이대로 가다간 다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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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던 우주쓰레기가
강력하게 우주정거장을 강타했다.
크게 흔들린 우주정거장은 점차 기울어지더니
기울어진 채 왼쪽으로 빙글 뱅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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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빨간색 경보등과 혼란스러운 내부에서
이미 죽어버린 시체들은
우주선 내부의 버튼들을 마구 눌러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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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혼잡한 우주정거장 내부를
더욱 혼잡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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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에게 말했었다,
우리가 이 궤도에서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의심하지 말고 서로를 안아주기로.
서로를 사랑해 주기로
"있지. 너는 계속 나 좋아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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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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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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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임무 배정된 거 보긴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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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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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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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탈 'Wasser'호는
지구와 조금 더 가까운 궤도에 있어
90분에 한 번씩 지구를 한 바퀴씩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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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내가 탈 'Boden'호는
지구와 조금 더 먼 궤도에 있어
95분에 한 번씩 지구를 한 바퀴씩 돈다.
​
이 두 정거장은 마치 트랙을 도는
두 달리기 선수처럼 계속 엇갈리다가,
속도 차이로 인해 정확히 4년에 한 번
서로 가장 가까워지는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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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합 주기가 4년이면..
그래도 블랙아웃 시간은 길지 않을 수도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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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달 정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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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벌써 알아봤어?"
​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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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정도는 너랑 연락 못해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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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뚱히 그녀를 쳐다보다가
괜히 손목에 있는 애플워치를 쳐다봤다.
시간은 오후 9시 1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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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자자."
치이익 하는 소리와 이어진 목소리에서
그녀의 음성과 닮은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음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주전파 속 주파수를 거쳐
그녀의 목소리와 닮은 스피커로
그녀를 흉내 낼 소리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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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잘 들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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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걸 굳이 티 내고 싶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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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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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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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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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수프를 먹었어.
양송이 수프였는데 설레임처럼 짜먹는 거였어.
양송이 알갱이가 하나도 없었어.
다 갈려있는 건지 들어는 있었던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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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들어는 있었을까.
네가 날 좋아하는... 마음도
그녀의 Wasser 호에 문제가 생겼다는 무전을 받았다.
그녀와 연락할 수 없는 블랙아웃 기간이었다.
그 무전마저 2주 전의 일이고
지구를 거쳐 도착한 무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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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걱정된다기보단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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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을까 봐라기보단
네가 타고 있던 그 우주정류장이
우주쓰레기가 되어
내 우주정거장을 무너뜨릴까 봐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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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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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대한 걱정보다
나의 목숨에 대한 걱정을 먼저 한 내 스스로가
너무나도 더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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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수건에 물을 묻혀 몸을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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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들은 살짝 튀어
동그란 모양으로 정거장 내부를 떠다녔다.
그 물방울 안에서 죽어있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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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물방울들은 닦지 않았다.
"있지. 난 죽으면 물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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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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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물이 되어서 지구를 영원히 순환할 거야.
물은 정말 여러 형태가 될 수 있잖아.
수증기가 되기도 하고 구름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지구를 영원히 순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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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구에서 죽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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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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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만약에 임무 중에 죽으면 어떡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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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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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럼 네가 날 지구에 데려다줘."
내 예상이 맞았다.
보통 예상이 맞으면 좋은 일인 것 같지만
내 경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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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따지자면 좆 된 일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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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관제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Wasser 호는 어이없게도
다른 궤도의 우주정거장과 충돌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 다른 궤도의 우주정거장과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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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뒤섞인 우주정거장은
이제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4년. 회합 주기와 알맞은 속도로
그녀와 그것은 나를 향해서
한 달쯤 지났을까. 지구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우주비행사들을 고용해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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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은 'Boden rescue operation'
나는 솔직히 그녀의 정거장과 충돌해
죽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그녀를 지구로 돌려보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작전을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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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들은 내가 그녀를 데려가는 것을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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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설득하고 설득했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이미 다른 정류장과 충돌해 하나가 되어버린 그녀를
데려가는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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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조향 타를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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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하러 온 이들을 배신하고 우주선을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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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있는 곳까지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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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은 죽이고 몇몇은 묶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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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막아둘 걸 그랬다.
그렇지만 테이프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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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을 모는 건 훈련은 받았지만
실전은 처음이어서 많이 서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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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적당히 우주쓰레기를 받으며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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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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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은 엉망진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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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화기를 들고 헤치를 열어
우주로 유영해 그녀의 시체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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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에는 '양송이 수프'가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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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는
'진짜 양송이가 함유되어 있음'
이라고 쓰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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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안고 소화기를 지구 반대 방향.
그러니까 우주 방향으로 쐈다.
반작용에 의해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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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되어야 해. 너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