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면 가래침이 까맣게 변할 줄 알았는데, 아무리 담배를 펴도 그대로인거야. 꽤 많이 폈는데 말이야. 한 개비, 두 개비. 콜록 콜록 대다면서도 세 개비는 어느새 한갑 두갑 세갑을 이어서 피다보니까 3시간 정도가 지나있었어. 빨갛게 타들어가는 끝부분을 집중해서 응시하다 보면 바람에 날려 눈알에 날아와 늘러붙는 담뱃재들은 가끔씩 내 눈을 따갑게 만들었어. 이럴거면 시가를 필 걸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돛대를 꺼내들고 미심쩍게 바라보다가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 다시 담배를 샀어. 이번엔 말보루 레드로. 아줌마는 이제 더이상은 민증검사도 안하더라고. 대신 나를 조금 한심하게 쳐다보는 듯 느껴졌어. 일산화탄소 중독인지 니코뽕인지 머리가 핑 돌며 살짝 헛구역질이 낫지만 그래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느린 방식의 자살이라면 나는 이래야만 할 것 같이 느껴졌어. 꼭 거대한 신이 내 뒷덜미를 잡고 담배에 입을 가져다 대는 것 처럼 말이야. 그 신의 모습은 마치 힌두교의 '비슈누'라는 신하고도 닮아있었어. 중학교 사회문화 교과서에서 읽었던 비슈누는 우주의 유지와 보호를 맡는 신이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마치 나는 우주의 법칙에 힘 없는 일개 개인으로서 무력하게 그냥 강제로 담배와 입맞춤하고 겨우 호흡하고 있는거지, 그게 산소호흡기마냥. 사실은 자살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 어쩌면 나는 담배와 입을 맞추며 겨우 호흡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지도 몰라. 그게 내 폐를 더럽히고, 나를 가장 느린 방식으로 내 폐포에 검은 타르조각을 옮겨붙여 끈쩍거리게 굳혀버리고 있지만서도_손으로 문지르면 꾸덕하게 묻어나오는 검은 액체같은 고체가 나를 걷지 못하게 내 발을 붙잡고 있더라도. 나는 이 호흡법이 아니면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건지, 그게 아니면 나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그게 죄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냥 스읍- 하고 들이마셨다가 후우- 하고 내뱉으니 내 폐를 거친 약간은 따끔하고 따뜻한 공기가 나를 거쳐 세상으로 퍼지는거야. 남들은 그 연기를 싫어하는 거고.
너는 잘 살고 있니? 너랑 초등학교 때 분수에서 놀 때 재밌었는데. 엉뚱하게 너는 자전거를 가져오자고 말했었고, 우리는 아파트에서 나오는 그 분수에서 자전거로 물줄기 사이들을 빠르게 지나치며 놀았지. 어른들은 자전거가 망가진다며 우리를 혼냈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추울까봐 욕조에 따뜻한 물을 틀고는 우리 둘이 들어가서 놀았지. 살짝 열린 화장실 문 밖에선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는 도라에몽 오프닝이 들리고 있었어. 너는 내가 그 노래를 들으며 집중하자 나에게 손으로 물총을 만들어 내 눈에 발사했었지. 나도 그걸 따라해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어. 첨벙대다가 넘친 물은 배수구로 들어갔었지. 그 소리는 꽤나 특이했었어. 골골골. 하고.
너는 중학교 2학년 가을쯔음부터 나한테 갑자기 '있지 민정아 나, 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어'라고 이야기 했어. 나는 처음엔 그게 적당히 시적 표현이나 소설적 인용 뭐 그런 건 줄로만 알았어. 아니면 적당한 시기에 온 중2병. 뭐 그런걸로만 생각했었지. 별이 너한테 시켰다며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기 전까지는. 너는 적당히 큰 나무에 걸려 공중에서 두바퀴를 돌다가 화단에 왼쪽 발목부터 부딪혀 휠체어 신세가 되었었지. 사실 그 후로 모두 너를 따돌릴 때 나는 너를 도와줄 수 없었어. 변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날의 나는 너무 어렸고, 또 ... 용기가 없었어. 그치만 남자애들이 휠체어에 타있는 너한테 물에 젖은 휴지를 던지며 '자살녀다' 하고 놀릴때 그 애들을 비웃던 네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 너는 그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거지?
중학교 3학년 여름부터 너는 보이지 않았어. 나는 가까운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고 안정권으로 그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어쩌면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공부를 해야했어. 그래서 너가 사라진 걸 조금 늦게 눈치챘어. 어쩌면 너가 사라진 계절은 여름이 아니라 봄이었는지도 몰라. 다행히 고등학교를 안정권으로 가고, 여느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조금씩 화장을 하기 시작했었어. 안경을 벗고, 고데기를 하고, 립밤을 발랐어. 그게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립밤인건 중요하지 않았어. 내가 화장을 해서 조금이라도 예뻐보일 수도 있겠다는 희망과 가능성이 중요했던 거야. 그러다 보니까 고백을 받았어. 나는 그 남자애한테 '도대체 내 어디가 좋냐'라고 수십번은 물어봤었는데 그럴때마다 그 애는 '네 얼굴'이라고 말하곤 했어. 나는 사실 그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어. 나는 내가 꾸며놓은 내 얼굴이 가치로 환산되는 걸 원하지 않았는지도 몰라. 모순적이게도.
'민정아, 나 너랑 있으면 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만 같아.' 그 애는 나한테 갑자기 그렇게 말했어. 나는 속으로 화들짝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 덤덤하게 그냥 이야기를 들었어. '나는, 너랑 있으면 좋아. 내 고백을 받아줘서 고마워.' 어떤 보행 터널 밑에서 나랑 그 애는 결국 입을 맞췄어. 잠깐 입술이 부딪히다가 몇번 자리를 정비하고는 다시 입을 맞췄어. 3초정도 입술을 맞대고 있다가 그 애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고 터널 끝 매달려 거꾸로 자라고 있는 풀들을 쳐다보는 것 같았어. 솔직히 의외로 내 첫 입맞춤은 드라마나 소설처럼 엄청 설레지도 두근거리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애의 손을 잡아줬었어. 그날 나는 화장도 안하고 나왔었는데..
'별의 목소리를 듣는다'는게 뭔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 같아. 너도, 그 애도 들었던 별의 목소리는 어땠을까. 둔탁했을까, 동굴처럼 깊었을까, 소프라노처럼 맑았을까, 하프처럼 청아했을까
너가 있는 세상에서는 이미 아는 사실이겠지만 그 남자애는 며칠 뒤 죽었어. 그리고 그때즈음 너도 꽤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전해들을 수 있었어. 별의 목소리를 들은 자들은 곧 죽고 마는걸까. 나는 사실은 그 남자애를 사랑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 그렇지만 너희 둘 다 나를 두고 떠나갔다는 사실에 조금 어쩌면 진짜 조금 너희를 원망했는지도 몰라. 너희 둘 다 자살로 세상을 떠났으니까. 나도 별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매일 밤 하늘을 봤던 것 같아. HTC-3000, 86916HM 등 이름조차 복잡한 별들을 모조리 외웠어. 너희가 들었던 말을 했던 별을 찾고 싶었어. 나도 그 별의 이야기를 듣고 자살하고 싶었어. 그렇지만 그때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어. 아무도, 그 어떤 별도 나에게는 말을 걸어주지 않았어. 우주적 관점에서 나는 지구라는 좌표에 존재하는 미아였던 거지.
당연히 공부도, 문화생활도 전혀 즐기지 못한 채 그냥 나이만 스무살이 되었어. 대학도, 취직도, 심지어는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어. 나는 그냥 병적으로 방에 쳐박혀 자살을 빌미로 아빠를 협박해 산 천체망원경으로 하늘만 바라봤어. 방문은 잠궜지만 아빠가 문에 작은 구멍과 식사 배급용 구멍을 만들어서 거기로 음식을 주고 받으며 나는 하루종일 망원경만 쳐다봤어. 가끔 엄마가 그 구멍으로 내가 뛰어내려 자살하진 않을까 하고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여의치 않았어. 나는 사실 의외로 별의 목소리를 듣기 전에는 죽을 생각은 없으니까.
'담배를 펴.'
머리를 강타하며 울리는 목소리, 청아하지도 둔탁하지도 않았어.
'안녕, 날 찾고 있었니?'
오히려 기괴함에 가까웠어. 수십명이 동시에 말하지만 화성이 하나도 맞지 않아
어쩌면 절규처럼 들리기도 하는 떼창같은 목소리
'지구는 지옥이야, 내가 널 거기서 꺼내줄게.
죽음은 끝이 아니야. 새로운 시작이야.
두려워 하지 마. 날 믿어. 민정아.'
흐릿하게 첨벙거리는 소리와 도라에몽 오프닝 소리가 들려왔어.
이번에 들리는 목소리는 초등학교 시절
나와 같이 놀았던 친구의 목소리
'나는, 네 얼굴만 좋았던 게 아니야.
부끄러워서 다 말하지 못했어.
보고 싶어. 날 보러 와줘.'
나뭇잎이 마찰하며 소리내는 사사삭 소리.
적당히 울리는 터널 안의 공명.
'담배를 피는 게
너가 여기에 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별이 나에게 말했어.
'최대한,
최대한 많이 펴야 해
숨도 못쉴 만큼
어쩌면 입에서 토가 나올 만큼
혓바닥이 까매질 만큼
기침을 하면 검정 가래가 튀어나올 만큼
눈앞이 하얘질 만큼
손가락이 타서 없어질 만큼 펴야 해'
2026. 8. 16. 15: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