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에게.
상처받지 않는 사랑이란 뭘까.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상처주기 위해 서로를 사랑하는게 아닐까. 사랑과 상처, 그 두 말은 상반된 말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은 하나의 뜻을 가진 유의어가 아닐까. 가끔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지난 달, 보름달이 너의 눈동자에 반사된 그날. 너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어.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어. '너와 난, 우리는 과연 서로 상처받지 않는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실 그 고민 때문에 답장이 많이 늦었어. 물론 나도 너를 좋아하지만, 솔직히 너를 좋아하는 감정보다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은 감정이 더 앞서는 것 같아. 너랑 갔던 특별한 도넛집에서 봤던 ∞모양의 도넛처럼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영원히 똑같은 채로 등속직선운동을 하며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맞는건지, 아니면 평범한 도넛가게의 도넛처럼 O모양의 도넛에서 너와 내가 만나버리는게 맞는건지. 아직도 실은 잘 모르겠어. 너는 아마 나의 확답을 바라며 이 편지를 읽고 있겠지만 그런 편지가 되지 못해서 미안해. 이게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들과 생각들이야. 최대한 솔직하게 적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만 줄일게. 회신 기다리고 있어.
-b가
b에게.
안녕. 널 부담 줄 생각은 없었는데, 이미 내가 한 말로 인해 벌써 너가 상처를 입어버린 것만 같아서 두려워. 서로 상처받지 않는 완벽한 사랑... 그런 건 아마 없을 거야. 너랑 나랑 함께 한다면 분명히 우린 상처를 주고 받을 거고, 이런 저런 잊지 못할 사건들이 줄줄이 생기게 되겠지. 하지만 말이야, 나는 그런 상처조차 사랑이라고 봐. 너가 상처와 사랑이 실은 하나의 뜻을 가진 유의어라고 하였듯이 반대로 상처 또한 사랑이 될 수 있는거 아닐까? 나는 실은 너랑 상처투성이 사랑을 하고 싶어. 누구 하나가 끈질기게 매달리거나 그런 걸 의미하는 건 아니야. 사랑이 곧 상처라면, 상처가 곧 사랑이라면. 난 너와 그 사랑을 최대한 많이 느껴보고 싶어. 너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나라는 사람을 너의 깊은 곳에 남겨두고 싶어. 그게 사랑 아닐까? 그리고 도넛. 우리가 특별한 ∞자 모양 사랑을 하기 때문에 양쪽 끝에서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출발하였을 때 중간에 겹치는 지점에서 만날 수 있었던거야. 오히려 평범한 O자 모양 사랑이었다면 우린 서로 영원히 서로의 발자취만 밟으며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몰라. 있지, 내가 그때 너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날. 너가 내 눈동자에 비친 달을 보고 있었을 때 난 너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너의 눈 속에 가득 찬 나의 모습을 볼록거울로 바라보듯이 말이야. 네 눈동자 속 나는 엄청 행복해보이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사랑한다는 말이 튀어나와버렸어. 응. 나는 아무래도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 이게 내 마음이고 진심이야.
-a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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