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이런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이 이 더러운 세상에 자그마한 걸레질을 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최근에는 다이어트를 했다.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던 것 같다. 성취감에 가까운 것에 사로잡혀 나날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어제의 일이다. 조금씩, 그러니까 정말 미묘하게 기분이 조금씩 예민해지나 싶더니 갑자기 내 기분이 더럽혀지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경사면을 따라 굴러가는 빨간 공을 상상해보자. 아무래 완력으로 공을 위로 밀어붙여도, 올라가는 그 순간 만큼은 환호성을 지르며 놀라워할 수 있어도. 결국 잠깐 힘을 빼고 쉬려고 하면 원래 그 자리로 데굴데굴 굴러 가버리는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내려가는 속도는 중력가속도의 영향을 받아 점차 빨라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올라가는 그 순간도 계속 보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라서 결국 빨간 공은 오르막을 포기하고 내려올 수 밖에 없는 거다. 원래 그 자리로, 원래 있던 더러운 그 바닥 속으로. 그렇다면 내리막을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리막은 몇천년에 걸쳐 세워진 내리막으로 이루어져서 그 누구도 쉽게 바꿀 순 없다. 바꾼다 해도, 이번엔 파란 공에게 있어서 그 길이 오르막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다. 이 우주는 모든 것을 균형을 잡고 가운대로 중심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중학교 우주과학 시간에 배운 적이 있다. 결국 누군가가 돈을 벌게 되면 누군가는 돈을 잃게 되는 것이고, 누군가가 태어나게 되면 누군가가 죽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주의 진리이자 세상의 법칙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곳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곤 한다. 애초에 오르막 내리막은 이 우주가 만들어낸 균형을 잡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기분이 더러운 것도, 또는 기분이 좋았던 것도 깊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내 기분 또한 우주의 초월적인 힘에 따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오른쪽으로 가기도, 왼쪽으로 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게 가끔 너무 비틀어져버릴 때가 있지만 언젠가 다시 가운데로 오길 바라면 된다.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꺼져가는 한 생명 또한 별거 아닌 일이다. 그저 우주의 법칙에 따라 누군가가 태어났기 때문에, 우주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 생명을 꺼버렸을 뿐이다. 변압기의 전기가 한정되어 한 전기를 키면 한 전기가 꺼져버리 듯 그저 별거 아닌 듯이 '툭' 하고 끊어져 버린 것 뿐이다. 내 기분이 더럽다는 이 우주의 이유로 우주가 시킨 칼을 집고는 '푹'하고 심장에 날카로운 금속을 집어 넣었을 뿐이다. 칼의 플라스틱에는 눅눅하고 끈쩍한 빨간 액체가 손에 범벅이 되어 묻기 시작했고 플라스틱은 그 액체의 점성에 따라 손가락에서 점차 멀어져 미끄러져 나가서 바닥에 푹 하고 떨어졌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별 일 아니다. 항상성을 위한, 필요에 의한 일이었을 뿐이다. 그래야만 했던 일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감당이 되질 않는다. 내 기분이 더럽다는 이유로 나를 항상 돌봐주던 엄마를 내가 내 손으로 찔러 죽였을 리가 없다. 내가 내 팔을 흉터지게 그을때도, 울면서 17층 창문에 한 손으로 매달려 있을 때도, 그 어느때도 내 옆을 지켜주던 엄마를 내 자의로 죽였을 리는 만무하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엄마는 누워서 나를 쳐다본다. 눈물을 흘리는 듯 하다. "괜찮아 엄마. 엄마. 다 우주의 법칙이야. 이게 그러니까.... 이게 다..." 순간 엄마는 칼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하곤 그 더러운 액체가 묻은 날붙이를 자신의 배를 향해 찔러 넣기 시작했다. "괜찮아..우리 아들.. 이제... 다 ... 괜찮아.. 다...우주의 법칙...이니까... 우리 아들이 죽였다고...그러면....안돼........"이내 꿈틀대더니 움직임이 멈춘다. 시체는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왠지 서글퍼 보이기도 한다. 이것 또한 우주의 법칙, ...이라기엔 너무 괴로운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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