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풀내음의 시대는 갔다.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무차별하게 짓밟아버린 우리의 꿈은 이미 물에 잠겨 허우적댄지 오래다. 시끄러운 매미 소리도 앵앵 돌아가는 벌초기의 소리도 사사삭 지나가는 풀벌레의 나무마찰 소리도 이제는 죽어버리고 말았다. 흙을 집어들어 냄새를 맡아보지만 이미 바싹 말라 우수수 떨어질 뿐이다. 지나친 풀내음의 시대는 갔다. 지나친 풀내음의 시대는 갔다.

 우울이라는 이름으로 가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설령 그것이 진실일지어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 처럼 가리려고 해도 자꾸만 손톱과 마디마디 사이로 삐져나오고 마는 것이다. 누군가 손을 잡아 그것을 부러뜨려야만, 아니 그래도 아픈 손을 쳐다보느라 그것을 또 보지 못한다. 관절 사이에 염증이 돋는다. 이미 너덜거리는 손을 뒤로하고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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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 시절 붕괴된 정신을 뒤로하고 나는 자퇴를 결심했다. 그 다음 국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한림예고를 졸업했고, 한국영상대를 다니다가 다시 한번 더 자퇴하고 국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예술대인 서울예대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고, 음원도 몇 냈고, 글도 인정받아 오디오북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반대로 그 과정에서 주요 우울장애 진단을 받기도 했고, 자해와 자살시도를 밥먹듯이 하다가 응급실에 실려가기를 반복했고,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했으며, 약물치료와 TMS라는 경두개자기자극술, 상담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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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너무나 아팠다. 그리고, 여전히 아프다. 무리하게 밟아버린 새싹의 봄처럼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내 생명들이 꺼져가는 걸 느껴야만 하는게 너무나 아프다.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고 새싹을 다시금 밟는다. 폴짝폴짝 뛰어가며 우당탕탕 밟는다. 장마는 가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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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나는 그곳을 배회하고 있다. 많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듣곤 하지만, 그 아픔을 이제 겪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꾸준히 전해주곤 하지만 그 아이는 여전히 장마가 오는 그날 언덕에서 새싹을 밟으며 뛰어놀곤 한다. 폴짝폴짝 우당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