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없을 거라는 거 안다. 그치만, 그치만 이 말만은 들어봐라. 

그 강아지의 이름은 어쩌면 짧게 채썰린 무말랭이도, 겨울에 삭혀진 홍어도, 땅속에 파묻힌 감자도 아니었다.

그 강아지의 이름은 실은 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은 내 어릴 적 어렴풋이 기억날랑 말랑 하는 시골 이장님 댁에서 피어나는 작은 연기와 같은 기억일 뿐이다.

 

 

어릴 적 나는 유난히 콧물이 많았다. 물론 그 계절이 겨울인 탓도 분명히 있겠다만 그럼에도 나는 늘 내 주변에 휴지를 파묻고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눈물 또한 많았다. 엄마는 늘 그런 나를 걱정하며 늘 동그란 화장실 휴지를 들고 다니며 내 눈물과 콧물을 닦기 일수였다. 엄마의 손이 쉬는 순간은 오직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일을 보는 시간 뿐이었다. 그런 나는 아버지를 쫓아온 빚쟁이들에 의해 새벽 3시, 그러니까 닭이 울기 위해 잠에서 일어나 서서히 기지개를 피고 부르르 떠는 시점에 갑자기 집을 떠나 자동차를 타고 이름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시골 마을에 머무르게 되었다. 다 쓰러져가는 폐가에 도착하고는 나는 늘 내가 아끼던 작은 공책을 찾았다. 그 공책엔 내가 원하는 것들이 마구 적혀있기 따름이었는데 예를 들어 로보트 장난감,, 과학 잡지 같은. 그치만 그 공책이 수중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나는 또다시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아이마냥 통곡하며 꼬끼오 하고 울기 시작했다.  다시금 엄마가 달려와 동그란 화장실 휴지로 내 얼굴을 문대며 침과 눈물과 콧물이 섞인 휴지를 방 구석에 대충 휙휙 던지던 와중 나는 이내 울음을 그칠 수 밖에 없었다. 폐가에는 옛날 집이라고 할 만큼 작은 마당이 있었는데, 그 마당 한 가운데에 시골에 늘 한마리쯤 있는 커다란 하얀 백구가 우리 가족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 강아지를 난 다 부서져 바람이 송송 통하는 커다란 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강아지는 자신이 마을의 방범대라도 된다는 양 한걸음 두걸음 우리에게 당당히 걸어오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자세를 낮추곤 온 동네가 떨어져나갈 듯이 짓기 시작했다. "멍!!" "멍!!!!!" "으르르르" 엄마는 당황해 어떡하냐는 듯 잠시 벌벌 떨다가 나를 감싸안고는 지구가 떠나갈 듯 나를 잡고 계속해 부르르 떠셨고, 아빠는 갑자기 가방에서 휙휙 음식물을 뒤지더니 봉지에 싸온 반찬거리, 그 안에 있는 무말랭이를 '휙~' 하고 던지셨다. 처음에는 킁 킁 냄새를 맡다가 무말랭이 주위를 빙글 빙글 돌기 시작했다. 강아지의 엉덩이는 다른 곳의 털과는 다르게 갈색 털이 박혀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내 흙이 섞인 무말랭이를 냉큼 집어먹은 강아지는 그 흙이 텁텁했는지 몇번 캑캑거리다가 결국엔 꿀꺽 삼키고 사나웠던 눈매는 곧 사라져 꼬리를 흔들며 아빠에게 다가가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기 시작했다. "옳지, 배가 고파서 그랬구나." 손에 몇가닥 더 무말랭이를 집고 주기를 반복하던 아빠는 곧 우리의 모든 무말랭이를 그 강아지에게 줘버리고 말았다. 아빠의 무말랭이 기부가 끝나자 강아지는 볼 일 다 봤다는 듯 유유히 대문을 향해 빠져나갔고, 우리는 겨우 찾은 집구석에 안도감을 느끼며 갑작스레 싸온 짐은 다 풀지도 못한 체 그 짐짝들에 기대 마치 5성급 호텔 침대인냥 눈을 감자마자 편안하게 잠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