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의 PC방은 언제나 같은 냄새가 난다. 컵라면 국물 냄새, 키보드 틈새에 낀 과자 부스러기 냄새, 그리고 인생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의 땀 냄새. 나는 카운터 구석에서 고장 난 마우스의 버튼을 의미 없이 딸깍거리며, 이 모든 냄새의 총합이 내 미래의 냄새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17번 자리 아저씨는 오늘도 똑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20년은 더 된 그 고대 유물 같은 게임. 저그를 상대로 포토 캐논만 짓다가 앞마당이 날아가는, 어제와 정확히 똑같은 레퍼토리. 패배가 확정된 화면을 보며 담배를 입에 무는 모습까지 어제의 데자뷔다. 저 사람은 자신의 인생이 매일 리플레이되는 버그에 걸린 걸까. 아니면 저게 저 사람의 유일한 안정감일까. 모니터의 푸른빛만이 아저씨의 지친 얼굴을 성실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내 과제를 하던 2번 자리로 돌아왔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카이빙’이라는 거창한 주제의 디자인 프로젝트. 포토샵 화면에 띄워놓은 건 멸종된 도도새의 뼈대 사진이었다. 뭐가 사라졌다는 건지. 그냥 없어진 거지. 나는 한숨을 쉬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때였다.

“저… 저기요!”

17번 자리 아저씨였다. 목소리가 다급하게 떨리고 있었다.

“컴퓨터가… 컴퓨터가 이상해요.”

가보니 그의 낡은 모니터에는 선명하고 거룩한 파란색 죽음이 떠 있었다. 블루스크린. 0x0000007B, INACCESSIBLE_BOOT_DEVICE. 익숙한 문구. 나는 무심하게 본체의 리셋 버튼으로 손을 뻗었다.

“아, 안돼! 끄지 마! 제발… 끄지 마세요!”

아저씨가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마른 손에서 전해지는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눈은 절박하게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손님, 이거 재부팅해야 풀려요.”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리셋 버튼을 눌렀다. ‘삑-’ 하는 단말마와 함께 화면이 암흑으로 변했다. 그 순간, 아저씨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뱉었다.

컴퓨터는 금방 다시 켜졌다. 익숙한 윈도우 바탕화면. 나는 의례적으로 물었다. “이제 로그인하고 다시 하시면 돼요.” 아저씨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텅 빈 바탕화면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사라졌어… 그 여자도 사라졌어…”

“네? 누가요?”

“내 아내… 내 아내가 저 안에 있었는데…”

그때부터 시작된 아저씨의 이야기는 내가 평생 맡아 본 어떤 냄새보다도 지독했다.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한 아저씨는, 어느 날 이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버그를 발견했다고 했다. 특정 조건에서, 특정 유닛 하나가 인공지능을 벗어난 움직임을 보이며 자신을 따라다니더라는 것.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씩 채팅창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열을 출력했는데, 그게 꼭 죽은 아내의 말투와 같았다고. 그는 그 버그를 ‘아내’라고 믿었다. 매일 밤, 그는 이곳에 와서 게임 속 아내와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 블루스크린이 뜨기 전까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미친 소리다. 하지만 저 눈물은 진짜다.

“네가… 네가 죽였어.”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더 이상 어제의 그 무기력한 패배자가 아니었다.

“네가 내 아내를 또 죽였다고, 이 씨발새끼야!”

그는 키보드를 뽑아들고 모니터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퍽! 퍽! 플라스틱 파편과 함께 모니터 화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PC방의 다른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모두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카운터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아저씨는 이제 박살 난 모니터를 번쩍 들어 나를 향해 던졌다.

경찰이 오고, 아저씨가 끌려나가고, 모든 소란이 끝났을 때 PC방에는 나와 부서진 17번 자리만이 남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키보드 조각을 발로 툭, 찼다.

사랑도 결국엔 복구 불가능한 깨진 데이터에 불과한 걸까. 에휴, 담배나 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