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시 글쓰는게 좋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생각하지 않고 타자에 집중해 화면을 두드리고 글자가 화면에 생기며 그 글자가 누군가에게 읽힌다고 상상하는게 좋다. 따지고 보면 글쓰는게 좋다기보단 타자를 치는 행위가 좋은 걸지도 모른다.
옛날 내 글중에 ‘울지 말라고 무책임하게 말하지 마라‘ 라는 글이 있다. 그냥 그 생각이 났다. 새벽에 무작정 울다가도 한 30초쯤 울고는 멈추는 것 같다. 나는 나한테 더이상 울지 말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냥 지금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그거라면 그 감정이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감정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그걸 지금 온전히 느껴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딱히 내가 예술을 해서라던가 그 감정을 나중에 써야하니까 같은 이유는 아니다. 지나고 나면 그 감정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라는 이유에 가깝다.
내가 서울예술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르시시스트 시절 엠비티아이가 INTP가 됐던 시절이 있다. 사회성은 정말 없고... 사람은 막대하고....(막대한다기보단 그냥 나한테 재미있는 사람만 남기고 이외는 그냥 대충 대하는 느낌...?..적고보니 그게 막대하는 거 같긴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당시 내 가장 큰 고민은 ‘더이상 예술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지어는 교수님 작업실을 찾아가 상담하기도 했다. “교수님 요즘 어떤 음악을 들어도 어떤 영화를 봐도 아름답다고 감정을 울리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교수님은 내게 이렇게 말하셨었다. “아마 그 음악이나 영화가 동작하는 방식을 알게 되니까 동작하는 방식이 보이고 구조가 보이니까 그 구조가 표현하고 있는 모습은 잘 안보이는거 아닐까요? 앞으로도 아마 그렇게 감각을 느끼기는 어려울 수도 있어요. 이미 그 구조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면.” 나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실 앞의 말보다 뒤에 말만 기억에 남았었다. 앞으로 나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솔직히 예술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사실은 최근에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참고로 지금 MBTI는 INFP이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나는 언어장애가 있는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는데 그 친구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친구와 놀았더니 반 친구들이 나랑 그 친구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내가 친구가 적어져 말 수를 줄이게 되니 내 말투나 말버릇도 더듬거나 웅얼대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국어 발표시간에 어떤 여자애가 내가 발표할때 웃음을 참던 일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그떄부터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히키코모리를 동경했고, 실어증이 있는 여주인공을 사랑했다. 닌텐도 스위치를 샀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단순히 게임속 즐거운 세상이 아니었다. 내가 현실에서 도피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세상을 구할 수도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는 나의 은신처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불행히도 나는 게임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고... 게임에 그닥 몰입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히키코모리는 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나는 그때 보았던 게임이라는 세상을 믿긴 한다. 요즘도 게임을 가끔씩 하고는 한다. 여전히 못하지만, 그래도 그때 보았던 세상으로 지금이나마 들어갈 수 있다면 들어가보고만 싶어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것과 같이 죽고싶은 이들도 당연히 있다. 내 글 중 ‘우쥬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에서는 타자의 시선속에서 잔인하게 머리가 으깨져 사망한 사람이 결국 우쥬라는 공간에서는 자유롭게 어쩌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실 행복하게 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는 불완전성때문에 요즘은 이 말을 잘 쓰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꼭 행복하려면 불안 우울이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그걸 떼어놓고 이야기하니 뭐랄까 정말 행복만 하려면 마약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닐까 애초에 행복 하면 떠오르는 ‘가정’ ‘아이’ ‘사랑’ 이런것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낳은 지배적 구조 아래 동작하는 시대적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암튼!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저 글을 쓴 이유는 사실 지구라는 행성 자체에 태어난 인간들이 지옥을 살아가고 그 지옥 체험이 끝나면 우쥬라는 거대한 세상 속에서 자유롭고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타자의 시선, 그러니까 눈동자 속에서는 머리가 깨져있고 뇌수가 흘러나오며 징그럽게 꿈틀대지만서도 실제로는 그렇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걸. 타자의 시선에서 ‘저 사람은 이기적이게도 자살했어.’ ‘저 사람은 죽을 용기로 살아보지도 못했어’ 라는 말을 듣기도 전에 그 언어 자체가 그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자살자들은 왜 항상 나쁜 말을 들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그 사람이 떠난 곳이 좋은 곳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언젠가 나도 떠날 그곳이 편안했으면 좋겠는 마음에 그 글을 쓴 이유가 크다.
스위스에는 안락사 기계가 있다고 한다. 그 기계와 비슷한 원리의 장치를 실제로 만드려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이데아를 꿈꾸지만 여기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가 없어서 따지고 보면 이데아로 가는 로켓을 만드려고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로켓을 만들지는 못했고 나는 여전히 여기 지구라는 어쩌면 지옥에서 이 글을 다시 적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은 이데아 또는 현실을 표방한다고 배웠다. 그렇지만 이데아는 커녕 예술작품은 이렇게 불완전한 현실조차 완벽히 표방하지 못한다. 어떤 감각은 분명히 누락되기 마련이고 누락된 감각은 결국 불완전한 현실이 어떤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경험하게 해준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은 이데아라는 표방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행위를 반복할 뿐인거다. 그러니까 예술 작품을 만드는 건 내가 안락사 기계를 만드는 행위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은 모두 다 이데아로 가는 로켓을 만드려고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글을 싸지르니까 조금 좋은 것 같다. 생각도 조금 정리되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내 생각이라는 것 자체도 언어체계로 이루어져 내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조금 체감하는 것 같다. 자주자주써야징 ㅋ
'글이나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쥬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 (1) | 2026.04.20 |
|---|---|
| 어린 시절의 나야 그렇게 살지 못해서 미안해 (0) | 2026.01.23 |
| 내가 좋아하는 것들 혹은 좋아했던 것들 (0) | 2025.12.09 |
| 제 책 <봄에 피는 초록이라는 언어>가 출간되었습니다! (0) | 2025.09.05 |
| ai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아 (5) | 2025.08.2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