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무 미워하진 마.”
정적이 흐르기도 전에 목화는 말했다.
“내가 너를 왜 미워해. 오히려 내가 더 나쁜 사람인걸.”
정원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눈물이 줄줄 목덜미를 지나, 정원이 입은 회색 티셔츠에 검은 얼룩이 조금씩 번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 살리는 거, 멈추지는 마.”
정원이 말했다. 목화는 그 말을 듣고는 ‘그래, 적어도 이 사람만큼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줬었지’ 하고 과거를 상기했다.
“참치.”
“…그래. 언제 한번 참치에 소주나 한번 먹자.”
목화는 울고 있는 정원 앞에서 의외로 담담하게 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투박한 문을 열자 그제야 들리는 시끄러운 빗소리. 비는 오래된 철문 바로 앞, 하얀색 시멘트 계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목..목화야.”
손목이 붙잡힌 채 뒤돌아본 목화는 정원의 애절한 눈빛이 보기 싫어 시선을 피해보았지만, 정원의 눈물 젖은 티셔츠만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비행기가… 나는…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의 원리를… 알지 못하지만… 그치만… 그치만 비행기는 하늘을 난대.”
목화는 작게 중얼거렸다.
“…왜 사는지 몰라도, 그냥 사는 것처럼.”
목화는 집으로 돌아와 젖은 옷가지들을 바닥에 펼쳐 놓았다. 왠지 비를 피하기 싫어 우산도 쓰지 않고 왔더니, 흠뻑 젖은 옷들의 무게가 집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몸을 씻고, 양치를 하고, 선풍기를 켜고 침대에 누웠다. 휴대폰으로 유튜브라도 보고 싶었지만 솔직히 그럴 힘도 없었다. 그래도 눈을 감지는 않았다. 천장에 있는 무늬를 살펴봤다. 찾기 힘들었지만 결국 찾아내는 점들이 있었다. 목화는 그 점들을 발견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꿈속에서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는 것처럼.
“사랑해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당신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아요. 제발… 제발 저랑, 저랑 만나보세요. 저랑 만나보고 결정해보세요. 저 정말 괜찮다니까요? 저를 한 번만 선택해주세요.”
정원의 집 TV에서는 애절한 사랑 고백이 담긴 대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딱히 정원이 튼 건 아니었고, 9시 뉴스가 끝나고 방영되는 드라마였다. 정원은 딱히 TV를 보고 있지도, 그렇다고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지도 않았기에 그냥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창밖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적당히 섞인 남자의 사랑 고백은 더욱 서글프게 느껴졌다.
“나 남자친구 있는 거 알잖아. 그만해줘. 괴롭다.”
TV 속 여자가 말한 ‘괴롭다’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소중한 친구를 잃기 두렵다는 의미였을까, 아니면 다른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자괴감이었을까. 사실 정원은 여자의 갈등보다 남자의 무대뽀 돌진이 조금 더 역겹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한다는 여자를 괴롭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다음 날 목화는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어릴 때 살았던 마을— 그중에서도 금화가 실종된 산을 올랐다. 산길은 많이 좋아져서 나무 판넬과 계단이 생겨 있었다. 스마트폰을 열고 대충 그 지점에 빨간 목적지를 찍고는, 경로를 이탈해 걷기 시작했다. 커다란 나무들이 목화를 모두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도중, 발이 푹 하고 빠졌다.
정원은 목화가 좋아했던 참치캔을 까서 젓가락으로 잘 꺼내 밥과 김에 싸서 입에 넣었다.
“마요… 네즈가…”
목화가 좋아했던 레시피 그대로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마음에 냉장고를 열어 마요네즈를 찾다가, 목화가 먹다 남긴 포카리스웨트를 발견한 정원은 그것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
“언니! 언니!! 세상은 정말 넓어. 우리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는데.”
금화가 목화에게 말했다.
‘소환… 인가?’
소환이라기에는 금화의 모습이 너무 선명했지만, 현실이라기에는 그 외의 것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일그러진 나무와 시뻘건 하늘, 흐르는 흙 사이로 고여 있는 물.
“언니. 잘 들어. 언니는 아직 여기 오면 안 돼. 그래서 내가 온 거야. 정원 오빠 집에 언니 흔적을 남겨놨어. 오빠가 곧 올 거야. 난 현실에 많이 개입하면 안 되니까.”
목화는 금화의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을 휘젓는 것처럼 부드럽게 통과됐다. 사실 허공보다는 부드러운 밀림에 가까웠다.
“금화야… 금화야. 보고 싶어. 돌아와주면 안 될까?”
“언니는…”
금화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언니. 미안하지만 다음엔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멀리 있다가 만나자. 나도 보고 싶을 거야. 사랑해.”
정원이 쓰러져 있는 목화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야, 목화야! 정신 차려! 목화야! 제발 좀!”
다급해 보이는 정원의 목소리에는 불안함보단 두려움이 가득해 보였다. 목화는 왜인지 그런 다급한 정원의 모습을 보고는 헛웃음이 났다.
“푸흡…”
“야… 신목화, 넌 지금 웃음이 나오냐?”
“아… 풉……왜 왔어, 어떻게 알고 왔어.”
“…어플 아직 안 지워서. 보고 싶어서. 근데 이상한 산으로 걸어 들어가길래 걱정돼서.”
“너 나 보고 싶었구나?”
목화는 정원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목화는 정원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근데 정원아, 있잖아. 우리가 이래서 안 돼. 너는 날 너무 좋아하는데, 나는 너한테 이만큼 돌려줄 수가 없어요. 나는 사랑이 많진 않은 사람인가 봐. 그래서 너한테 미안해서 안 돼.”
정원은 눈을 감으며 어제 본 드라마를 떠올렸다. 남자의 무대뽀 돌진이 역겹다고 생각한 자신을, 그대로 자신에게 투영했다. 여전히 역겨웠다.
“목화야, 있잖아.”
“응?”
“난 그래도 너랑 있으면 좋아. 너가 그냥 좋아.”
정원은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역겹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적어도 본인만큼은 그 감정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난 너를 사랑하나 봐.”
본 글은 최진영 작가님의 '단 한 사람' 이라는 소설의 설정, 인물을 가져와 제작한 2차 창작물....입니다. 허락 받지 않았습니다 ㅠ 문제 될 시 삭제하겠습니다...쩝 최진영작가님 싸랑해용
'글이나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는 영원히 너랑 살래 (0) | 2026.07.02 |
|---|---|
| 글을 싸지르는 사람 (0) | 2026.05.01 |
| 우쥬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 (1) | 2026.04.20 |
| 어린 시절의 나야 그렇게 살지 못해서 미안해 (0) | 2026.01.23 |
| 내가 좋아하는 것들 혹은 좋아했던 것들 (0) | 2025.12.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