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슬한 표정으로 담뱃재를 털어내며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듯 담배를 바닥에 휙 하고 던지곤 뒤를 돌아서 두 건물 사이에 비추는 붉은 노을을 봤다. 짙은 베이지 색의 부식된 콘크리트 벽 사이로 작은 빨간 입자들이 그 사이로 내뿜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점차 구름이 몇점 지나가는 것을 멍하니 쳐다봤다. 하나 하나 천천히 그 건물을 피해 나왔지만 결국은 다른 건물 사이로 다시 들어가는 구름들이 인상적이었다. 붉은 해는 점차 밑으로 사라져버렸고 이내 짙은 어둠이 하늘을 뒤덮었다. 벌써 밤이 되어버린 것이다. 거리에서 절묘히 들리던 어린아이들의 뛰노는 웃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공기는 이내 차가워지더니 입에선 입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후, 하고 한번씩 불 때마다 입에서 영혼이 빠져나오는 듯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답답했던 몸 속의 더러운 노폐물이 배출되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몸에 힘을 빼곤 그 밤의 추위를 즐겼다. 추위는 이내 나를 따뜻히 안아주고는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괜찮다는 듯, 원래 모든 것이 추위 후에 느껴지는 몸 안의 따뜻함,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운동에는 세컨드 윈드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운동을 시작한 직후는 죽을 것 같이 힘들지만 이를 견디고 나면 운동이 재밌고 더 운동을 하고 싶게 만드는 두번째 바람이 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나. 우리의 인생은 결국 이 세컨드 윈드와 닮아 있다고 생각을 하곤 한다.

 바닥에 주워진 담배를 주워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담배는 식은지 오래 되어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버렸지만 가루가 부스스 떨어지곤 했다. 그러곤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까 보였던 콘크리트 건물은 등 뒤로 사라져 다른 건물들 사이로 가려져 버렸다. 내 옆으로 달리는 자동차들은 각자의 표정을 갖고 있다. 화난 표정도 있고, 어딘가 서글픈 표정도 있다. 자동차들은 참 불쌍하다. 태어날 때 정해진 표정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 인생은 분명히 어딘가 망가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오묘한 표정을 가진 자동차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찌보면 웃는 얼굴이지만, 어찌보면 우는 얼굴이기도 한 그런 자동차들이 좋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집에 도착해 샤워기를 틀어 온수를  최대로 틀었다. 사아아 하는 소리가 화장실 내에서 끝없이 공명하다 사라지고 있었다. 태어나자 마자 사라진다는 건 어찌보면 참 슬픈 일이지만 그러기에 가치있는 삶이라고 나는 믿어주고 싶다. 그리고 좁지만 그렇기에 여러번 튕길 수 있는 이 세상 속에서 여러번 튕겨나올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임이 분명했다. 어차피 생명은 언젠가 꺼지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모두 꺼져가고 있는게 사실이니까. 그러기에 사라져 가는 그 물방울 소리소리에게 자그마한 작별인사를 고했다. 

 손을 물줄기 속으로 집어 넣자마자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추운 공기를 계속 맞아버린 손은 차가워진 온도에 적응해버려서 실은 그렇게 뜨겁지 않은 이 물줄기가 매우 뜨겁게 느껴졌던 것이다. 손은 이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물줄기 속으로 손을 넣기 전까진 내가 다른 환경에 적응해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변화가 다가오기 전까지는 내가 다른 환경에 적응해버렸다는 사실마저 깨닫지 못했다는 뜻이다.

 최근에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 라는 단편소설을 읽었다. 소설 내에서 주인공과 애인은 미래를 예언한다는 신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그 신은 두 연인에게 '너희 둘은 결혼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해준다. 실은 둘은 가까운 시일 동반자살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실은 두 연인 중 한명의 어머니가 과거에 했던 예언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동반 자살을 할 때마다 하루가 앞당겨 진다고 했다. 그렇게 점차 과거로 돌아가선 서로가 처음 만나는 그 설레는 순간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둘은 결국은 동반자살을 하지 않았고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과거의 군부독제 시대의 어머니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고, 예언하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의 행복한 순간을 되새김질 하는 방법만을 택했지만, 현재 군부독재가 끝난 지금의 예언가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상상하는데 성공했고 둘은 결국 그 평범한 미래를 택하게 된 것이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토록 평범한 현재,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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