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행의 끝 찾아온 명예처럼 잃기 쉬운 것 너머 우스운 네 얼굴 표정 하나하나까지 기억해 조개의 빛나는 진주 사이로 밤양갱을 집어 넣어선 잃기 두려웠던 공포 속에서도 네 한숨 속에서도 네 울음 속에서도 네 웃음 속에서도 네 한심함을 다 알고 있는 그 여자애도 또는 네 가벼움을 다 알고 있는 그 남자애도 네 사이에 꼭꼭 집어 넣어선 꾸겨 넣고는 집어 던지지만 휴지통에서 튕겨나가듯이 항상 잼을 바른 빵이 밑면이 되었듯이 탕에 들어가면 전화 벨이 울리듯이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너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그 얼굴이 마치 밤양갱처럼 조개처럼 진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하는거다. 나는 그저 네 옆에 한번이라도 남아 내 웃음과 함께 네 웃음에 묻혀가고 싶었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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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 적고 있어?"
급하게 적던 글을 뒤로 숨기며 당황하며 말한다.
"아, 아니 그냥 글."
"그러니까 무슨 글이냐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모든 게 허무해지기 시작한다. 이는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다.
어이없이 정차하지 않고 신분당역을 지나는 신분당선과 같다.
"그러니까... 신분당역."
"어?"
당황하며 손을 내짓는다.
"아, 아니 신분당역이 아니라. 그러니까.
아니 사실 맞아. 신분당역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어."
신분당역, 이틀 전 가스 테러가 일어났던 곳이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다 성폭행을 당하기 시작했고, 끝내 목숨을 잃게 되자 그녀의 아버지가 그 아이들이 자주 다니던 역에, 그것도 하교 시간에 맞춰 테러를 계획한 것이다. 하교시간인 이유는 글쎄, 아무래도 등교하면서 죽는 것 보다 공부하고 하교까지 하다가 죽는게 더 억울해서가 아닐까. 좋은 점은 그녀의 아버지는 그 아이를 괴롭힌 주동범 중 4명을 죽이는데 성공했다는 점이고, 나쁜점은 그 4명중 2명이 우리반이라는 것이다.
"그랬,,구나 . 나도 안됐다고 생각해. 실은. 나도, 도와주고 싶었어. 주연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역겹게 위선하는 니 면상을 주먹으로 쳐버리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와주고 싶었으면, 정말로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면, 당장 뛰어내려 죽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근데... 너 주연이랑 아는 사이였어?"
고개를 돌리니 정중앙의 책상과 맨 뒤 창가 쪽 자리에 하얀 꽃이 각각 하나씩 놓여져 있다.
"하얀 꽃은, 결백을 상징해. 넌 쟤네가 결백하다고 생각해?"
하얀 꽃 사이 사이가 이미 조금은 시들어 말라 비틀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꽃잎의 가운데 부분은 생기를 유지하며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내말은, 쟤네가 저런 꽃을 받을 자격이 되냐 이말이지."
꺼져가는 불빛은 늘 아름답다, 라고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 그 불빛을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장 떠올려보기만 해도 활활 타고 있는 불만 주구장창 봤지 꺼져가는 불빛은 보기가 어렵다. 본다 한들 실제로 그 모습이 아름답기는 커녕 처량하기만 하다. 더이상 탈 연료가 없어서 꺼져가는 그 처량한 흔들림과 밝기, 그리고 이내 다 타버리면 나는 씁슬한 탄냄새까지.
"난... 난 그러니까 솔직히 별생각 없는걸. 사실 너도 그렇잖아. 너도 사실 주연이가 살아있을 때 방관하고 너만 살겠다고 도망쳐오다가 이제야 주연이가 죽으니까, 없어지니까. 그리고 그 가해자들도 없어지니까. 그제서야 너가 영웅인냠 행동하지 마. 너도 똑같은 위선자일 뿐이야."
울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도, 나도 같은 위선자일 뿐이라면. 우리가 같은 선상에 놓여져 이 우주의 흐름에 맡겨져 있는 거라면. 같은 방사선을 맞고 같은 시선을 보고 같은 향기를 느끼며 같은 지형 위에 서서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게 사실이라면. 그게 현실이라면. 울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결국은 서로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엄청난 거리에 가까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나는. 솔직히 주연이가 죽었으면 했어. 이딴 현실이 정말 현실일리 없다고 매일 눈치를 살피고 공책을 그으며 아이들을 피하고 손목을 긋고 약을 먹으며 지쳐하는 모습도. 내가 보기 힘들었어. 버거웠어. 그래서 이젠 떠나버린 주연이를 그리워하고 애도하기보단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곳에서의 삶은 이곳만큼 아프지 않기를 기도할거야."
아파하는 건 죄가 아닌데, 세상이 널 아프게 하는 건 세상의 죄야.
견디는 건 너의 몫이지만 미워하는 건 타인의 몫인 걸.
이젠 잊어버려도 괜찮은 일들은 잊어버리고 살아.
그래도 될 가치가 있을 거야.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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