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길가에서 널 마주쳤을 땐 마냥 기쁠 줄 만 알았는데, 그렇지도 못했다는 건 어쩌면 나는 널 사랑한 게 아니라 너의 몸짓, 너의 말투, 너의 생각 하나하나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늘은 애석하게도 너무나도 파랬고, 그 아래 서있는 너는 세상의 불균형이 무너져 내리듯 불공정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 아래 그어져 있는 반듯한 하얀 네모 판자들은 횡단을 위한 그림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 거리를 치수로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 느껴졌다. 신호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빨간색에서 초록 색으로, 초록 색에서 주황 색으로, 주황 색에서 파란색으로, 파란색에서 다시 빨간색으로. 너와 나는 얼어붙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 거리 사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서로를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과거에 이미 눅눅하게 눌어붙은 썩은 음식물 찌꺼기 같은 기억들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나는. 그리고 너는,, 너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뒤틀린 세상 속에 존재해버린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분명 우리는,, .
자동차가 눈앞으로 지나간다. 처음에는 하얀 자동차가 지나가더니, 다음은 검정 자동차. 그다음은 노란 자동차가 지나간다. 내 눈동자는 시속 50킬로로 달리는 자동차를 열심히 쫓아가보지만 어림도 없다. 어쩌다 이렇게 빠르게, 어쩌다 이렇게 순식간에. 차에 타 있을 땐 이 자동차의 속도가 이렇게 빠른 줄 몰랐는데 내리고 나서야 알아채버린 거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실은 엄청난 속도로 서로 뒤틀려지고 있었던 거겠지. 자동차 두 대가 맞물려 지나갈 땐 속도가 두 배로 빨라 보이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
그때의 난 너무 어렸는지도 모른다. 항상 우리는 매번 늘 어리다는 핑계로 무언가를 덮곤 하지만 이번 일에 있어선 정말로. 나는 너무 어렸다. 이제야 온전한 사랑을 배워서 너를 만나 너에게 내 사랑을 모두 전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때 네가 나에게 말해줬던 울지 말라는 위로는 실은 쥐뿔도 먹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됐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는 널 너무 믿어버린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나에게 준 모든 것들을 실은 아직도 갖고 있다고, 그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걸. 나는,, .
비가 온다. 아까의 파란 하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다. 자세히 보니 너 또한 없다. 눅눅한 비 사이 너를 바라보던 횡단보도의 앞에 서서 조그마하게 눈물을 흘려 본다. 울지 말라고 무책임하게 말하지 마라. 내 울음을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영원히 나랑 함게 해줄 것도 아니면서. 하다못해 나의 사소한 취미 하나조차 기억해 주지 못할 거면서. 그래도 어쩌면 나는 아직 밝은 횡단보도에 서 있는 너의 모습을 간간이 생각해버리고 마는 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너의 무책임한 모습과 나에게 상냥했던 모습을 동시에 떠올릴 거다. 네가 이렇게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다시금 나에게 상기시켜 줄 거다.
신호등이 깜빡인다. 빨간색에서 초록 색으로, 초록 색에서 주황 색으로, 주황 색에서 파란색으로, 파란색에서 다시 빨간색으로. 너와 나는 얼어붙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 거리 사이만을 응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서로를 쳐다보지 않고 있을 수 있을까, 과거에 이미 눅눅하게 눌어붙은 썩은 음식물 찌꺼기 같은 기억들이 존재는 하는 걸까. 어쩌면 나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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