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에 나왔던 웃지 못하는 고양이는 서 있는 내 발 밑을 기웃거리다가 이내 조용히 앉고는 고양이 세수로 스스로를 단정히 만들다가 곧 떠나버렸다.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며 병원 침대 옆 창문을 보니 왠 뽀글 머리 아줌마가 같은 병원 글씨가 쓰인 환자복을 입고는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웃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웃기 위해 발버둥 쳐야지. 안 그래?" 아줌마는 그런 이상한 말을 내뱉고는 엄지와 검지로 위태롭게 잡고 있던 담배를 휙 하고 창문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떨어지는 담배꽁초는 점차 가속을 받는 듯싶다가 이내 스스로의 무게와 거슬러 올라오는 바람의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적당한 속도로 회전하며 낙하하는 듯 보였다. 웃지 못할 상황이라는 건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더 이상 웃음을 지어 보일 힘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담배.. 피면 안 되시잖아요." 어렴풋이 의사가 저 아줌마에게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병명은 폐암. 가망이 거의 없어 치료를 거부당하고 입원 후 줄어가는 본인의 여생을 이 병원에서 보내고 있다. "있지, 난 어릴 때부터 병원이라는 장소를 싫어했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아파서 이 장소에 오게 되잖아. 그래서 다들 심각하고 힘이 없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는 싫었어." 아줌마가 엄지와 검지에 묻어있는 담뱃재를 살살 문지르며 뱅글뱅글 돌리며 말했다. 그럴 리 없지만 아줌마의 말과 함께 담뱃재가 갈려 바스스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느껴졌다. "... 유영하고 싶어. 아직도." 
 
두 번째 꿈에 나온 고양이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멀리서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내가 다가가려고 하면 그 거리를 맞추어 도망가기만 바빴다. 하지만 내가 멀어지면 그 간격을 맞춰서 나를 따라오고는... 고양이 세수를 시작했다. 잠에서 깨 눈을 뜨자 아줌마가 병실 침대에 누워 티브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티브이에서는 아직 뜨지 못한 연예인들이 시골로 내려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밭농사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참내, 누가 누굴 도와주겠다고." 아줌마는 기가 찬다는 듯 콧방귀를 뀌어대며 어이없어하다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피식하고 웃어버린 나와 눈이 마주쳤다. "... 풉." "... 웃기니?" "..." "얘, 도움이라는 건 도와줄 여유가 있을 때나 하는 거야. 막상 나 혼자 산다 같은 거 보면 저기 나오는 저 이름도 모르는 저런 애들이 서울살이 하겠다고 반지하 살면서 정작 도움받아야 되는 건 지들이면서" 구시렁대는 표정으로 이것저것 열변을 토하던 아줌마는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잠시만 기다려보라며 병실 침대 밑에서 검은 봉지 하나를 꺼내며 내게 먹으라고 권했다. 봉지 안에는 제철이 한 분기 지난 과일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아줌마는 오늘 새벽 산책이 하고 싶어 몰래 병원을 나갔는데, 병원 1층에서 제철 지난 과일을 가득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자기는 곧 죽을 목숨이고 돈 같은 물질적인 건 더 이상 필요가 없으니 자기처럼 누군가를 도와줄 여유가 있을 때 남을 도우는 거라고 다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실은, 나도 아줌마와 똑같이 정작 도움받아야 할 사람이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 번째 꿈에는 고양이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나는 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다. 중력이 사라져 없어진 우주에서 나는 의외로 내 몸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고,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폭포 같은 물이 내 얼굴을 덮치더니 나는 잠에서 깼다. 아줌마의 병상은 난리법석이었다. 여러 명의 간호사가 달라붙어 한 의사가 간호사들에게 긴박하게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었고, 나는 아마 그 소리에 못 이겨 잠에서 깬 듯 보였다. 이내 들리는 삐- 소리는 내 심장까지 같이 덜컹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아줌마는 허무하게 떠나버렸다. 
 
아줌마가 떠난 날 오후, 나는 아줌마가 자주 담배를 피던 창가에 서서 엄지와 검지를 살살 문지르며 그녀를 추모했다. 창밖을 바라보니 제철 지난 과일을 파는 할머니가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할머니를 멍하니 쳐다봤을까. 왜인지 나는 할머니에게 아줌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려가 할머니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할머니는 본인의 일처럼 양손을 사용해 얼굴의 눈물을 닦아내며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우는 모습이 꼭 '고양이 세수' 와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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