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에 담겨있는 작은 하얀 조개들은 바사삭하고 흔들리다가 유리의 청랑한 벽면에 부딪혀 작게나마 틱 틱 팅 하며 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아무리 손을 뻗어도 거기엔 닿지 않아 파란색. 하늘색. 남색. 의미 없는 색깔놀이를 하자는 걸까 뭐 하자는 거야. 나랑 지금 장난하자는 걸까 범람하고 있어. 파란 액체가 흐물거리다가 첨벙 대고 넘쳐흐르다가 터져 나오고 있어. 미끄러져 흐르는 막대를 잡을 수 없어. 몇 번이고 위로 잡으려 했지만 흘러내려 이내 땅을 쿵 하고 찍을 뿐이야. 아프지 마. 나는 땅에게 그렇게 말했어. 땅은 결국 나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찍힌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어. 비가 오려는 걸까. 날은 맑은데 말이야. 하늘색은 파란색. 제길 또 파란색이야. 파랑 파랑 파랑. 지겨워 죽겠어. 의미도 없고 얼룩도 없는 맑은 파란색. 제발 그만 좀 해. 
 파란색이 얼룩이라면 얼룩은 너랑 나 사이를 포괄하는 말일지도 몰라.
 
 
”지연아,  내가 계속 너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말이야. 정말 괜찮은 거 맞아? “


천장의 하얀 물줄기들은 흔들리다가 다시 파사삭 하고 부딪힌다. 부딪힌 모래알은 먹을 수 없어서 녹여야만 한다. 녹은 물줄기들은 다시 천장을 흔들다가 천장에 맺힌다. 맺힌 물방울은 경사를 따라 흐르다가 다시 모래알로 변한다. 밀렸다 썰리는 물줄기를 바라본다. 바다일까. 사람들은 저걸 바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저것을 ‘쓰레기통’이라고 부르곤 했다. 엄마는 나를 쓰레기통 앞에 버렸다. 모래알은 조금은 따가웠지만 금방 적응했다. 내가 걷자 모래알은 나의 발모양을 복제하며 나를 졸졸 쫓아왔다. 나는 엄마를 굳이 쫓아가지는 않았다. 엄마는 뒤돌지도 않고 얼굴만 아는 아저씨의 차에 타고 가버렸다. 검은색 제네시스. 부드러운 시동소리와 움직임은 마치 범고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좌 우로 흔들리며, 앞으로 유유히 아름답게 나아가는 범고래와 제네시스.


“하늘은 원래 파란색이 아니야. 대기에서 일어나는 난반사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지. 원래는 검은색이야. 그게 맞아.”


"지연아, 지연아.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엄마는 나를 '지연'이라고 부르곤 했다. 단순히 내가 출산 예정일보다 늦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바다를 건너서, 엄마는 나를 만나러 올 거라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엄마는 그냥 쓰레기통에 날 버린 것이다. 지나가는 파도에 손을 얹어 광현이를 쳐다봤다. 광현이. 광현이는 빛 광에 어질 현을 쓴다고 했다. 특히 어질 현은 굳을 간에 조개 패를 붙인 한자라고 했다. 굳게 조개, 재물을 지키는 한자라고 했다. 조개. 조개.. 그러고 보니, 너도 바닷속에 있었나,

 

지금 우리는 같이 바다에 있긴 하지만.

 

"어릴 적 생각이 났어. 얘기했었잖아. 엄마가 날 여기에 버리고 갔어."

 

닿지 않아. 손을 뻗어서 흐르는 물에 손을 담가도, 아무리 담가도 걸어가도. 엄마가 있는 곳에 닿을 수 없어. 밀리고 쓸리는 파도는 손을 잡아주는 것 같이 느껴지진 않아. 오히려 날 밀어내는 것만 같아. 따뜻하지 않아. 차갑게 느껴져. 하얀 거품이 꼭 그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며 가리는 것 같아. 그 안에 존재하는 많은 동물과 식물들, 그리고 어쩌면 엄마까지.

 

"지연아,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우리 이겨내려고 온 거잖아."

 

광현이는 내 손을 꼭 잡아준다. 빛나는 조개. 글쎄,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너는 바닷속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거잖아. 그냥 밝게 빛나면서 해맑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거잖아. 일렁이는 물표면이 내 얼굴을 가리고, 너의 거품이 나를 가리고. 심지어는 빛의 반사 때문에 거울처럼 가려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잖아. 설령 네 안에 진주가 있더라도.

 

"광현아, 나 정했어. 우리 애기 이름. 진주로 하자."

 

"진주?"

 

"응, 내가 아니라 네가 임신하는 거지. 빛나는 조개. 그 안에 우리의 애기가 있었으면 좋겠어. 지연되어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파도는 스쳐 지나가다가 모래를 적시며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스며든 모래는 모래알을 적시다가 사라져 버린다. 살짝 검게 변했다가 다시 갈색으로 돌아오는 모래를 쳐다봤다. 모래의 색 변화에서 지연이 느껴졌다.

 

"지연아, 나는 내가 아니라 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온 거잖아. 바다. 너는 너희 엄마랑은 달라. 다시 찾아와 줬잖아."

 

찰랑거리는 모래알이 담긴 유리병을 살짝궁 흔든다. 왼 손에는 광현이의 손, 오른손에는 유리병을 들고 살짝 흔들며 소리를 느낀다. 틱틱팅 하며 부딪히는 모래알들, 그 안에 담겨있는 말려있는 작은 종이조각. 

 

"던질까, 던지고 놓아주자."

 

"그전에 잠깐."

 

"응?"

 

"진주는 있잖아, 지연될수록 더 커지고 아름다워지고 값비싸진대."

 

광현이는 무덤덤하게 파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광현이의 얼굴을 바라보진 않았다. 그냥 보면 안 될 것만 같이 느껴졌다. 바닥에 찍힌 발자국은 바람에 날려 지워져 어느새 우리가 걸어온 이 바다까지의 발자국을 지워버렸다. 고립된 것처럼. 그렇지만 나는 혼자는 아니었다. 광현이와, 진주와 함께 있었다.

 

"알겠어. 걱정하지 마. 그래. 우리 같이 임신하는 거야."

 

범고래가 뛰어올랐다.  한 마리, 두 마리, 다섯 마리가 뛰어놀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그래. 던지자. 지금."

 

진주는 내 뱃속에 있다. 우리 엄마는 어쩌면 이곳에 다시 왔었을까. 엄마는 왜 나를 여기에 버리고 갔을까. 범고래가 날 데려가주길 바랐던 걸까. 나는 광현이와 잘 살 수 있을까. 엄마랑 같은 잘못을 저지르진 않을까. 아니야. 아니야. 진주야. 나는 너를 사랑해. 앞으로도 사랑할게. 바닷속에 있어줘. 엄마가 찾으러 갈게. 너무 지연되지는 않게. 그렇지만 어쩌면 조금은 지연되게. 빛나는 조개를 찾아서 우리 진주랑 꼭 다시 이곳에 같이 와볼래. 엄마가, 지연이가. 진주랑, 광현이랑 꼭 같이 이곳에서 뛰어놀자.